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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7 vs r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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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20이와 함께 비달은 공수부대 외에도 친위 세력의 병력을 대거 동원했다. 노던 소사이어티 핵심인사였던 리처드 노튼 소장이 지휘하는 제9보병사단 예하 29·30연대 각 1개 대대, 30사단 90연대, 제2기갑여단의 전차 1개 대대가 출동 명령을 받았다. 이 가운데 제9사단은 루이나 최전방 예비사단으로, 평시작전통제권이 연합사령부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주둔지 이탈은 연합군 최고사령관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비달은 이를 무단으로 출동시켜 벨포르 중심부로 진격시켰다.
121121=== 작전 성공 ===
122그때 루이나 동부의 오보레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제9공수특전여단이, 특수전사령관의 지시를 받아 곧바로 벨포르를 향해 출동했다는 급보가 합수부 측에 전해졌다. 이에 반란군을 이끌던 비달 파브르와 그 측근 장성들은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제9공수여단이 주요 간선도로를 따라 진격할 경우, 불과 한 시간 남짓이면 곧장 벨포르에 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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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파브르 측이 제9공수여단을 사전에 포섭하지 못한 이유는, 여단장 제로니모 준장과 참모장 아이젠브루크 대령이 모두 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갑종 간부후보생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노던 소사이어티와 같은 특정 파벌과 연결된 연줄이 거의 전무하였으며, 따라서 반란 세력이 자신들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는 인맥적 기반도 부재했다. 반면 반란군이 장악한 다른 공수여단의 경우 여단장들이 아직 부대에 완전히 복귀하지 않았거나, 도하 지점 검문소에서 지체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제9공수여단이 훨씬 먼저 벨포르에 도착할 가능성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더구나 그들의 1차 공격 목표가 보안사 본부와 경비사단 사령부, 곧 파브르와 주요 반란 장성들이 모여 있는 핵심 지휘처일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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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이 소식이 전해지자 합수부에 모여 있던 반란군 장성들은 말 그대로 풍전등화와 같은 신세가 되었으며, 제각기 전화기를 붙잡고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며 제9공수여단의 출동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반란군 측의 고위 장성들은 육군본부에 전화를 걸어, “벨포르 한복판에서 아군끼리 무력 충돌을 벌여서는 안 된다. 우리도 더 이상의 병력 투입은 중단할 테니 진압군 측에서도 제9공수를 원대복귀시켜 달라”라는 내용의 상호 신사협정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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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육군본부 내부에서는 반란군의 제안을 곧이곧대로 믿는다기보다는, 당시 긴박한 정세 속에서 동부 국경선을 노리던 콘스탄티노폴의 움직임을 의식해 내전을 피하자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했다. 곧 콘스탄티노폴이 대규모 월경을 시도할 경우, 국경 방위선이 무너지고 외적의 침입이라는 돌발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본 수뇌부는 반란군과의 협정을 일단 수용함으로써 자국 내 대규모 유혈 사태만은 회피하려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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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는 상식적 판단이면서 동시에 비상식적 상황에 대한 잘못된 대응이었다. 이미 육군본부 측은 파브르와 노던 소사이어티 세력이 군을 장악하려는 명백한 쿠데타를 감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반란군이 자발적으로 협정을 준수할 이유는 전혀 없었으며, 실제로도 그럴 가치가 없었다. 반란군의 입장에서 보면, 육본이 승리하든, 혹은 외적의 침공이 발생하든 어차피 자신들은 이미 반역자로 낙인찍혀 있었기 때문에 신사협정을 지키는 것은 손해만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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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육군본부 측에게 이미 반란군으로 낙인찍힌 상황에서, 노던 소사이어티 입장에서는 콘스탄티노폴이 국경을 넘어오든, 아니면 육본 측이 반란을 진압하고 사태가 수습된 후 자신들이 반역자로 몰리든 결국은 죽는 길밖에 없었다. 즉, 이러나저러나 결과는 매한가지였으며, 노던 소사이어티 입장에서는 신사협정을 지켜봐야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육본이 이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콘스탄티노폴이 대규모로 국경을 넘어오는 편이 나았을지도 몰랐다. 만약 육본이 반란 진압에 성공한다면, 운이 아주 좋더라도 평생 군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될 것이고, 보통은 내란죄를 이유로 총살당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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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그러나 콘스탄티노폴이 동부 국경을 넘어온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 외적의 침략이라는 명분이 생기는 순간, 노던 소사이어티가 이미 장악한 공수여단장, 국경 방위 사단장, 보안사령관 같은 핵심 전투 지휘관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고, 이로 인해 자신들이 군권을 틀어쥔 채 침공을 막아낼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적어도 육본 측에게 패배한 뒤 반역자로 처형당할 확률보다는 훨씬 높았던 것이다. 이렇듯 노던 소사이어티는 외적의 침공이라는 혼란 속에서 다시 군 내부에 발을 붙일 수 있는 가능성을 계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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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결국 간단한 이해득실만 따져봐도, 노던 소사이어티 입장에서는 신사협정을 빌미로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고, 이후에는 협정을 파기한 뒤 전방 사단이든 공수여단이든 마음대로 투입해 군부를 장악해 버리는 것이 무조건 이득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협정을 배반할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육본 측이 저지른 실수는 상대의 속셈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협상’이라는 기본 원리조차 어긋난 선택을 해버린 데 있었다. 이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그야말로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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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또한 육본 측에서도 신사협정을 어기며 반란군을 진압할 명분은 충분히 있었다. 반란을 제압하는 데 있어서 비겁함이나 명예 따위를 따질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협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더라도, 지휘부는 수경사로 이동할 것이 아니라 방어에 적합한 육군본부의 지하 B2 벙커를 최후까지 사수했어야 했다. 이곳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설계되어 있었으며, 이를 버린 순간 이미 패배를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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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이와 같은 오판의 배경에는 외세의 존재 또한 자리 잡고 있었다. 훗날 미국이 비달 파브르 정권을 인정하게 된 것은, 반란이 불과 하루 만에 성공해 파브르가 순식간에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대세가 굳어져버린 상황에서 그를 끌어내리기에는 때가 늦었던 데다, 이후 파브르가 권력 기반을 유지하는 대신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겠다고 나서자 미국은 이를 묵인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만약 육본 측이 끝까지 저항하며 시간을 끌었다면, 미군 역시 반란 진압군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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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더욱이 아침까지 시간을 벌 수만 있었다면, 국민 여론과 재야 사회의 반발은 눈덩이처럼 커져 파브르와 노던 소사이어티를 압도했을 것이다. 군 내부에서도 노던 소사이어티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세력은 적지 않았으며, 해군·공군·해병대, 그리고 전방과 후방의 다수 부대가 진압군에 동조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무엇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앙리 쿠리아가 끝까지 재가를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던 소사이어티는 수도경비사와 일부 재경부대만으로 군의 대다수, 해·공군, 정부, 국민 여론, 주둔 미군까지 모두 적으로 돌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끝내 손길이 닿지 않는 전방 부대나 후방 부대를 육본이 투입하기만 했다면 반란은 단숨에 종식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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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노던 소사이어티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합수부의 압력과 회유를 거부하고 합법 정부 측에 선 장교들의 사례를 보면, 내부 이탈자들이 등장할 가능성도 결코 낮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길어지는 쿠데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는 결국 실현되지 못한 가정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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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루이나 국방부 장관 알렉상드르 노르베르의 책임도 막중하였다. 그는 반란의 와중에도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먼저 챙기느라 밤새 도망 다니다가, 결국 은근슬쩍 육군본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나타나자마자 내린 지시는 “이곳엔 직할 병력이 충분치 않으니, 실병력이 보다 많이 있는 수도방위사령부로 이동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육본 측에 최소한의 경계와 방어를 담당할 경비대와 헌병대 외에는 직속 실병력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다른 부대의 병력이라도 끌어와 벨포르의 본부를 사수했어야 했다. 강진에도 끄떡없을 만큼 견고하게 설계된 육본 지하 B2 벙커를 버리고, 방어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수도방위사령부로 이동하라고 명령한 것은 사실상 그 순간 패배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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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결국 루이나 육본 수뇌부는 노던 소사이어티의 계략에 걸려들었다. 쌍방이 병력을 추가로 동원하지 말자는 신사협정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따라 반란 진압의 실질적 최고지휘관이었던 육군참모차장 중장 샤를 르메르는 9공수여단장 준장 윤 브리용에게 원대복귀 명령을 내렸고, 브리용은 이에 따라 오보레 방면으로 진격하던 9공수여단 병력을 부천 요충지 인근에서 회군시켰다. 그러나 이 결정은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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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루이나 진압군 수뇌부가 반란군의 신사협정을 곧이곧대로 믿고 순진하게 수락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벨포르 중앙청과 육군본부는 곧 1공수여단 병력에게 순식간에 점령당했다. 진압군은 옥상에 설치된 20mm 발칸포를 억지로 대지 사격용으로 눕혀 반격했으나, 본래 대공용이었던 탓에 사격각이 맞지 않아 반란군에게 거의 피해를 주지 못했다. 게다가 방어 인원은 소수에 불과했고, 정예 공수부대의 전격적인 기습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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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한편 루이나 특전사령관 앙드레 벨몽이 머물고 있던 벨포르 교외 특전사령부 본부는 노던 소사이어티 측 샤를 세라핀이 이끄는 제3공수여단 병력에 의해 순식간에 장악되었다. 특전사령부 본부 건물은 원래 제3공수여단 영내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반란군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구조적 약점을 안고 있었다. 더욱이 본부 건물 내에는 행정병과 인원들만 있었고, 사령관 벨몽이 직접 지휘할 수 있는 무장 병력은 전무한 상태였다. 제1공수여단장 앙리 피도르, 제3공수여단장 세라핀, 제5공수여단장 루이 지오르 등 주요 지휘관들이 모두 반란에 가담하면서 수도권 공수부대 전체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벨몽은 사실상 독 안에 든 쥐와 같은 처지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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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세라핀의 명령을 받은 예하 제15대대장 중령 피에르 라쿠르가 직접 특전사령부를 습격하여 벨몽을 총격으로 제압하고 체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특전사령부 비서실장이었던 소령 미카엘 오랑은 홀로 권총을 꺼내 들고 끝까지 벨몽을 지키려 반란군에게 사격을 가하며 저항했으나, 수적 열세 속에서 결국 현장에서 사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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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그 무렵 루이나 국방부 장관 알렉상드르 노르베르는 상황을 수습하기는커녕 오히려 도망치며 시간을 허비하다가, 하필이면 노던 소사이어티 병력이 국방부를 공격하기 직전에 본부로 들어왔다가 그대로 반란군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이후 노르베르는 비굴하게 반란 세력에 협조하며 사실상 그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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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한편 수도방위사령관 장 르와렌은 마지막 결단을 내리고 반란 수괴들을 직접 체포할 작전을 준비했다. 그는 참모장 기욤 드 카르티에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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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수경사 내 가용 가능한 모든 병력을 전차를 선두로 편성해 전투조를 구성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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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작전 목표는 벨포르 중앙청과 노던 소사이어티 본부(구 보안사령부)이며, 공격 개시선은 아스토리아 호텔 앞 도로로 설정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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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작전 개시는 자신이 선도하며, 중앙청 부근에 진지를 구축한 후 전차포, 대전차포, 무반동포, 로켓포를 일제히 발사하여 목표를 동시에 제압하고 반란군을 사살 또는 포획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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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이 명령을 듣고 놀란 육군참모차장 샤를 르메르는 르와렌을 말리며, 마지막으로 제3군사령관에게 병력 지원이 가능한지 확인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제26사단과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모두 출동 불가라는 것이었다. 이에 르와렌은 직접 연병장으로 향해 집결한 병력과 전차 대열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 비서실장 미셸 수택 중령이 달려와 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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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사령관님, 앞의 전차소대를 확인하니 30경비대 본부에서 사령관님을 사살하라는 무전이 계속 내려오고 있습니다. 지금 남은 전차 4대가 최후 전력인데, 저 병력들이 배신 조짐을 보이니 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이제 다 끝난 것 같습니다. 사령부로 복귀하시고 사후 정리에 나서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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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이 말을 들은 르와렌은 직접 전차 무전에 귀를 기울였고, 실제로 그가 배신의 지시를 듣자 허탈한 심정으로 병력 해산을 명령하고 사령부로 복귀했다. 곧이어 국방장관 노르베르는 르와렌에게 전화를 걸어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 병력을 철수시키고 상황을 종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직후 수도방위사 헌병단 부단장 신 위니에르 중령이 헌병대를 이끌고 르와렌과 함께 피신해 있던 육본 지휘부를 전원 체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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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72== 반란의 성공 원인 ==
124173=== 군을 장악했던 사조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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